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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나뭇가지 위의 하얀 나비

잔혹동화 드림 합작 (Fate Zero 드림- 디어뮈드 오 디나/ 미하리미치 유리)

봄에 흰나비를 보면 부모가 죽는다.

자신의 나라에서는 첫 봄에 처음 보는 나비가 흰 색이라면 부모가 죽는다는 이야기가 있다고-창가로 날라 들어온 흰나비를 보며 소녀는 말했다. 그 말에 기사는 믿어지지 않는 눈길로 자신들 앞에 존재하는 흰나비를 쳐다보았다.

하얗고 작은 나비. 팔랑거리며 나는 모양새는 죽음을 불러들이는 사신이라고 하기에는 어렸고 가냘팠다. 소녀의 검은 눈동자는 조용히 창틀에 앉아 숨을 고르는 나비를 응시했다. 까만 동공에 하얀 날개가 비추어 대비를 이루었다. 가만히 나비를 보는 소녀는 모습은 묘하게 닮아있었다. 흰나비와.

그런 말을 해주는 소녀를 보며 기사는 소녀가 희 나비 같다고 생각했다. 소녀는 회색이었다. 검은 머리 검은 눈. 그리고 묻어도 자신의 색으로 덮어 버려 표가 나지 않는 칙칙한 회색의 옷. 소녀 자신도 자신의 색은 회색일 거라고 생각했다. 순수하지 않고 모든 것이 섞인 혼탁한 색.

하지만 기사는 하얗고 여리고 깨끗한 흰 나비라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잡아 낚아챈다면 날개가 찢어질 약한 존재. 그래서 지켜주고 싶었다. 지금 소녀가 회색인 이유는 날개를 얻기 위해 긴 겨울잠을 자는 껍질을 둘렀기 때문이라고. 회색의 껍질을 벗기고 나온 소녀의 날개는 분명 하얀색일 것이라고 그리고 기사가 보는 소녀는 하얀색이었다, 그녀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래서인지 기사는 흰 나비가 싫지 않았다. 소녀를 닳았기에

기사는 조심스럽게 나비가 앉은 창틀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가만히 앉아있던 나비가 날아올랐다. 팔랑- 빛이 하얀 날개에 부딪쳐 반짝였다. 하얗다 못해 투명한 날개에 잎사귀와 같은 문양이 비추어졌다. 부서지는 빛 사이로 나비가 떨어뜨리는 가루가 보였다. 요정의 가루처럼 빛을 두른 가루는 신비로워 보였다.

그 모습에 기사는 예전 자신이 살던 시대의 존재를 떠올렸다. 드루이드만이 볼 수 있었던 정령. 그들은 이런 날개를 가지고 허공을 날아다녔다. 자신의 마음대로 득을 주기도 하였고 해를 입히기도 하였다. 그들이 가진 성정은 짓궂은 장난꾸러기였기에. 어쩌면 이 나비도 그와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자신의 주인인 소녀는 허튼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런 그의 마음을 안 듯 허공에 멈추어 있던 나비는 조용히 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고운 맴씨를 자랑하는 손가락위에 사뿐- 내려앉았다. 나비의 무게는 가벼웠다.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단지 전해주는 것은 간지러움과 같은 촉감뿐이었다. 공기와 같은 무게에 정말 요정 같다고 느끼며 그의 입매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마치 소녀가 자신에게 다가와 준 것 같았다. 작고 여리고 하얀색인 지켜야 할 존재. 그리고 요정같이 이 세상의 악에 물들지 않은 순수함. 자신의 마스터. 분명 마스터인 소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그가 보기에는 자신의 손에 내려앉은 흰나비와 소녀는 너무나 닮았었다.

기사는 가만히 나비가 놀라지 않게 다른 한손의 손가락으로 날개를 쓰다듬었다.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그의 마음이 전해진 것 마냥 날개를 만지는 그의 손길에도 나비는 날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에 든 것처럼 날개를 그의 손 쪽으로 내밀었다. 그것이 소녀와 나비의 다른 점이었다. 소녀는 자신의 손길을 허용해 주지 않았다. 소녀가 허용한 관계는 전쟁을 위한 마스터와 서번트. 주군과 신하뿐이었다. 그리고 그도 그 관계를 깨뜨릴 생각은 없었다. 소녀를 지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곁에 있을 것을 허락받은 것은 자신뿐이었으니까.

랜서 계속 만진다면 날개가 찢어질지도 몰라요- 딱딱하게 다물어진 여린 입술에서 나비에 대한 걱정이 흘러나왔다. 신경 쓰지 않는다는 행동을 취하고 있었지만 여린 소녀는 기사의 행동에 행여 나비가 다칠까봐 신경이 쓰인 모양이었다. 그랬다, 그의 마스터인 소녀는 한낱 스쳐 지나가는 미물에게 걱정을 할 정도로 다정함을 지닌 사람이었다. 나비에게 시선을 빼앗긴 그의 시선을 물리치지 못하고 다가와 준 이 흰나비처럼.

그래서-

나비를 보던 금색의 눈동자가 소녀에게로 항했다. 옅은 금빛이 소녀를 둘러싸고 있었다. 딱딱하게 표정을 굳혔던 여린 얼굴은 걱정이란 감정을 담고 자신과 나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봄날에 피어나는 들꽃 같고 또 그 꽃에 앉기 위해 날라 들어온 하얀 나비와도 같아서-

하얀 날개가 움직인다. 작은 꽃과 같이 팔랑거리며 공중에 떠오른 흰나비는 기사를 떠나고 소녀를 지나쳤다. 검은 눈동자에 떠나가는 나비가 그려진다. 그리고 바로 앞의 메마른 가지로 자신의 몸을 가라앉혔다.

이른 봄이었기에 나뭇가지에는 아무것도 피어있지 않았다. 연둣빛의 잎사귀도 분홍꽃잎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존재하는 것은 딱딱하게 굳은 진회색을 띄는 마른 껍질뿐이었다. 하얀 나비가 내려앉은 모습은 마치 꽃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죽어 버린 나무에 하얀 꽃이 피었다.

꽃이 피었네요―그가 생각한 것을 소녀는 말했다. 그와 같이 소녀도 같은 생각이었다. 메마른 나무에 꽃이 피었다고. 기적과 같이 피어난 아름다움. 나비의 배려로 만들어진 기적. 사신이라 불리는 나비가 가져온 기적에 둘은 아무 말 없이 나뭇가지를 응시하였다. 한송이 뿐이었지만 피어난 꽃은 아름다웠다.

곧 저버리겠지요― 소녀의 검은 눈동자의 나비가 닫힌 눈꺼풀에 의해 사리진다. 하지만 그 꽃은 오래 가지 못한다. 마음을 바꾼 나비가 날아가 버리면 져버리는 꽃이니까. 허상과 같은 신기루의 꽃.

그래도 아름답습니다―기사는 말했다. 변덕에 사라지는 것이라고 해도 지금은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세상의 고단함에 지친 소녀가 저렇게 아름다움을 즐기지 못하는 모습이 되었더라도 그에게는 깨끗하게 보이는 것처럼.

자신의 서번트의 대답에 무뚝뚝한 꺼풀을 걷어 올리고 맑은 눈동자가 다시 드러났다.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검정색에 거울같이 기사의 모습이 비추어졌다. 그 순수함이 정말 나비와도 같았다. 그렇기에 지켜주고 싶다고 자신이 지켜야 한다고 기사는 생각했다. 결코 저 하얀 날개를 그 누구도 더럽히지 못하게 하겠다.

그 누구도.



* * *



붉은 피가 물들였다. 하얗고 하얀 소녀는 붉게 물들었다. 기사로 인해.

-내 소원은 말이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는 거야-

하얀 소녀가 말한다. 붉은 색을 두른 여자의 모습을 뒤집어쓰고

팔랑거리는 날개는 죽음이 둘러준 장신구들이 잔뜩 묻어있었다. 파르르- 떠는 몸짓에 뚝뚝-핏방울과 같은 붉음이 떨어진다. 생명이 깃든 물방울에는 비릿한 냄새가 함께 공기를 물들었다. 붉고 붉은 입술이 웃는다. 하얀 소녀는 결코 웃지 않았건만 붉은 여인은 그를 보고 웃었다. 괜찮다는 듯.

기사는 손을 뻗었다. 눈앞의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는 거부가 내민 손을 딱딱하게 굳혀 버린다. 기사의 손이 붉게 물든 여자에게 닿았다고 생각한 순간 사라진다. 붉은 색만을 기사의 눈동자에 새겨준 채.

사라진 허상은 빛의 가루로 변해 기사의 눈앞에 휘날린다. 나비의 가루처럼 어지럽게 날리며 아까의 허상을 잊으라는 듯 춤춘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루들이 기사에게 보여진다. 요정의 가루처럼. 내민 손은 거두어지지 않는다, 말라버린 나뭇가지처럼 굳어 기사는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으니까.

자신이 알지 못하는 기억. 자신이 하지 않은 행동. 자신이 겪지 않은 경험,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자신이 한 것이다, 기억을 하지 못한 것도 기억을 하는 것도 소녀를 지킨 것도 여자를 죽게 만든 것도.

감긴 눈 사이로 끊임없이 기억이 흘러들어온다, 자신의 음성을 한 매정한 음성들이 떠돈다.

바보로군요.-쾌락만을 쫒는 삶은 아무 의미 없습니다 -애정놀음이 아니란 말입니다-날 소환해 놓고 멋대로 행동하다 죽어버리면!!!- 저는 어쩌란 말입니까!!-어째서 그런 말을 한 것입니까!!!!- 전 결코 도망가지 않습니다―

칼날과 같은 잔혹함에 기사는 귀를 막고 싶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자신이 한 것이니까.

지켜야할 자신이 지키는 존재인 그녀를 상처 입힌다. 찌른다. 난도질한다. 그리고 죽는다. 말을 기억을 마음을 홀로 담고 소녀인 여자는 그를-자신을 구하고 죽는다. 그리고 후회한다. 기사인 디어뮈드 오 디나는.

몇 번의 후회일까. 몇 번의 죽음일까 몇 번의 만남일까-

기사는 생각했다. 이번의 기억은 무척이나 잔인하다고.

분명 자신이 한 것임에도 불구하도 또 다른 디어뮈드가 보기에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잔혹했다. 자신인 디어뮈드 오 디나는. 이기적이고 추악했다. 토악질이 올라올 정도로. 자신만을 알았고 주위를 둘러보지 않았다. 지우고 싶을 정도의 면을 가진 그도 자신이라는 사실에 절망감을 느꼈다. 어째서 그는 알지 못한 걸까. 자신을 사랑해주던 그녀를. 소녀를.

수많은 디어뮈드. 지금 자신도 그 디어뮈드 중 하나였다. 밀려들어오는 기억들. 그 속의 소녀.

자신이 기억한 소녀와의 삶은 행복했다. 그리고 지켰다. 그것뿐이었다. 소녀를 지킨 것은 첫 만남 그때뿐이었다. 그 후는 언제나 붉은 색이었다. 소녀의 마지막은.

또 다른 자신이 만든 행동- 삶 -기억. 지킨 것도 있었다. 잃어버린 것도 있었다. 하지만 다양한 모든 것들 중에 공통점은 있었다, 소녀의 색은 붉었다. 행복하게 웃는 마지막도 그 과정 속에는 소녀는 자신으로 인해 붉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은 사라진다. 자신만을 남겨둔 채. 항상 소녀가 먼저 사라졌다. 지켜주는 자신을 두고.

당신을 만나 행복했어요-품안에서 숨을 거든 소녀. 마스터. 마지막은 웃게 만들었다는 것을 단 하나의 위안을 삼고 기사는 맹세했었다.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계속 웃게 만들겠습니다. 유리

하지만 맹세는 지켜지지 못했다. 소녀는 여자는 망가졌고 결국은 죽었다. 자신으로 인해.

굳어가는 입술이 절망으로 벌려진다. 지키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지키지 못했다. 행복하기 원했건만 오히려 불행으로 내몰았다. 자신은. 기억하지 못한 그는 후회만을 되풀이하던 디어뮈드는.

호수와 같이 평온하던 검은 바닥이 튀어 오른다. 끈적이는 액체로 변한 검은색이 퍼져가는 파문처럼 일렁이며 강한 마력을 내뿜기 시작한다. 그리고 현계에 존재할 육체를 주기 위해 그것은 기사의 몸을 달라붙어 엉켜 맨다.

누군가가 소환하고 있었다. 많은 소환을 당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마치 처음 악에 빠졌던 그때와 같은 악의가 몸을 침범하고 있었다. 이번에 불려지는 것은 기사가 아닌-

붉은 덩굴이 기사의 몸에 새겨진다. 가지처럼 넓게 퍼져 기사의 몸을 휘감는다. 움직여지지 않았다. 절망으로 굳어버린 몸은 죽어버린 나무와 같이 딱딱한 껍질을 두른다. 악과 같은 진흙이 독을 품고 기사의 몸을 말려버린다. 아무것도 피어날 수 없게. -넌 영원히 지키지 못할 거야-매혹적인 음성이 저주를 건다. 알고 있는 진실을 다시 기사에게 말한다. 더럽히기 위해.

그래야 미쳐버릴 테니까-

흰나비였기에 소녀는 죽었다. 봄날의 사신인 흰나비는 부모대신 나비인 소녀를 데려간다. 그렇다면 죽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나비를 물들이면 되- 하얀 나비를 하얀 나비가 아니게 물들이면 죽지 않아. 이젠 하얀 나비가 아니니까. 붉은 나비니까.

점점 붉어지는 금색의 눈동자에 하얀 나비가 날아다녔다.

기사는 흰나비가 붉게 물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 * *



“난 당신을 죽일 겁니다”

비릿한 웃음이 아름다운 얼굴이 걸렸다. 담겨있는 뜻은 섬뜩했지만 그것을 전해주는 음성은 낮고 부드러웠다.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의 음성처럼 다정하고 달콤했다.

붉은 선이 여러 갈래로 퍼진 팔이 들어 올려져 소녀의 얼굴을 매만진다. 손등까지 뻗은 문양은 어찌 보면 영주와도 같다고 착각할 수 있었지만 결코 그런 착각을 할 이유 따윈 없었다. 영주는 오직 마스터만이 가질 수 있었고 그는 서번트였으니까. 자신을 소환한 마스터인 소녀를 죽이겠다고 툭하면 말하는.

자신의 말에도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는 반응을 보여주는 소녀를 보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기사는 매혹적으로 웃었다. 붉게 변한 동공은 흉물스럽기까지 하였지만 꿈에 나타나 정기를 빼앗아버린다는 존재처럼 그것조차 아름답게 보이게 만들었다. 그의 웃음은.

조금은 창백한 손가락이 여린 소녀의 얼굴을 매만지다 이윽고 가냘픈 목덜미 쪽으로 자리를 옮기었다. 인간이 아닌지라 낮은 온도가 섬뜩함을 전해주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숨을 끊겠다는 것을 보여주듯 한손으로 감싸진 손가락이 차례대로 힘을 주기 시작한다. 엄지손가락에- 검지손가락 – 중지 – 약지 - 마침내 새끼손가락까지 고르게 힘이 들어가자 표정 없는 소녀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변해갔다. 하지만 검은 눈동자는 움직임 없이 기사를 보고 있었다.

“고통스럽습니까?”

다정히 묻는 물음에 대답을 할 만하건만 소녀는 침묵을 지키었다. 그런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힘을 주는 손아귀의 힘이 강해졌다. 조금이라도 소녀가 반응해 주기 바라며 기사는 가만히 자신의 얼굴을 소녀의 귓가에 붙였다.

“ 나는 말이죠 당신을 죽였습니다.”

“ 몇 번이고 수차례 죽었지요.”

“ 그러니 지금도 죽일 수 있어요”

낮은 숨결이 부드럽게 귓가를 간지럽힌다. 달콤한 음성에 섞인 숨결이 죽음이 코앞에 닥친 와중에도 기분이 좋다는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어쩌면 죽음을 전해주는 손길의 주인공이 아름다워서 일지도 몰랐다. 그다지 외모에 치중하는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마력점의 위력이라고 하기에는 소녀에게는 틈이 없었다. 단단하다 못해 견교하게 응집되어진 마음은 그런 우롱과 같은 저주를 허용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점이 마력을 발휘할 때마다 살의와 비슷한 혐오가 올라왔었으니까.

몽롱해져가는 검은 눈동자에 하얀 천장이 비추었다. 멀리서 물결처럼 그의 음성이 들려온다―내가 증오스럽지요?

천천히 작은 손이 들어 올려졌다. 죽음 앞에서도 침묵을 고집했던 소녀의 몸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목을 조르는 기사의 등 뒤로 둘러졌다,

“ 원망하지 않아요”

겨우 짜내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하지만 자신의 원한 대답이 아니었기에 목을 조른 손의 힘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소녀의 말을 막겠다는 듯 더욱 더 강해졌다. 대답을 마친 소녀는 이대로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 눈을 감았다. 결코 자신은 그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줄 생각 따윈 없었으니까

툭- 목뼈를 부러뜨릴 것처럼 강하게 다시 한 번 힘을 주고 겨우 손가락이 떨어졌다. 쿨럭- 막혀있던 숨들이 봇물이 터지듯 튀어나왔다. 터져 나오는 숨에 경련까지 일으키는 소녀의 몸을 아까 목을 조르던 손이 다정하게 붙들어주며 등을 두드려주었다. 둥근 눈꼬리에 매달려 있는 눈물을 부드럽게 닦아주며 움직일 힘이 없는 소녀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 들였다. 방금 전까지 자신을 죽이려는 상대의 품에 있는 것은 어찌 보면 공포스러운 일이었지만 소녀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면 그의 뜻대로 되는 것이었으니까

천천히 품안의 있는 소녀의 검은 머리카락이 남자의 손가락에 걸쳐졌다. 길면 분명 예쁠 모양새였겠지만 짤막하게 자른 길이의 머리카락을 음미하듯 비비던 손가락이 그대로 아래로 내려가며 쓰다듬었다. 사락- 스쳐가는 소리가 소녀의 귓가에 울렸다. 그러자 정말 우습게도 편안해졌다. 지금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이는 아까 죽이려고 하는 상대인데.

몇 번이고 반복되는 감촉에 소녀는 졸음이 몰려왔다. 이대로 잠들면 죽일까. 순간 그런 걱정이 들었지만 소녀는 잠을 택했다. 결코 잠든 자신을 그는 죽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죽음이 아닌 원망이었으니까

아까와 다른 몽롱함을 맞이하며 소녀는 첫 만남을 떠올렸다. 전쟁을 위해 소환하고 나타는 것은 버서커라는 클래스였다. 광인-미쳐버린 영웅, 미쳐버린 자라는 클래스와 다르게 외관은 멀쩡하다 못해 아름다웠다. 단지 온몸에 새겨진 나뭇가지와 같은 붉은 문양과 붉은 동공이 그것을 겨우 인지시켜 줄뿐이었다. 예상과 다른 클래스에 멍하니 보는 자신에게 그는 놀란 듯 한마디를 내뱉었다.-마스터

그리고 애달프게 뻗어진 하얀 손가락은 우악스럽게 목을 졸랐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들어온 것은 웃음이었다. 너무나 아름답게 웃는 미쳐버린 웃음 .- 이번에는 먼저 물들어 드리지요 뺏기지 않아요.- 웃음과 함께 들려온 목소리는 슬펐다. 그래서 소녀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을.

곧 꿈속으로 빠져들어 갈 것 같은 눈동자를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때의 웃음이 기다린다. 단정한 얼굴 속에 홍옥과 같은 흰자위가 소녀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붉은 흰자위로 인해 더욱 도르라져 보이는 금색은 눈동자는 정말 금과 같이 아름다웠다. 독과 같이 치명적인 웃음을 걸친 입술이 나지막하게 열린다.

“당신을 물드는 것은 나입니다.”

자신이 원망하기를 그를 증오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만남을, 기억을 가진 그는.

아래로 끌어당기는 잠을 다독이는 소녀의 이마에 웃는 입술이 다가온다. 잠자리의 인사와 같이 다정한 입맞춤이 이마에 떨어진다. 그리고 밀어를 속삭이는 듯 연인의 음성으로 말한다.

“그게 싫으면 먼저 죽이세요.

기사는 웃었다.

하얀 나비는 붉게 물들어 하니까.



* * *



나비는 날아들었다. 메마른 가지에. 하얀 나비를 보면 죽는다. 모든 것이 시작되는 봄에 처음 보는 것이 하얀 나비라면 찾아오는 것은 생명의 시작이 아닌 죽음이었다.

소녀에게 찾아온 기사는 죽음의 손길을 몇 번이고 전해주었다. 나무와 같이 단단하고 굳센 손으로 몇 번이고 소녀의 가냘픈 목을 옮아 맸다. 그를 소환한 것은 겨울이었다. 겨울나무와 같이 메말라 버린 기사는 봄이 오기 전 소녀를 죽이고 싶어 했다. 그래야 하얀 나비가 되기 전 붉게 물들을 테니까. 붉게 물든다면 더 이상 소녀가 흰 나비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기사는 생각했다.

“커억!!”

여린 입술에서 타액과 함께 숨이 몰아 터져 나왔다. 몇 번을 만났어도 변하지 않았다. 자신의 마스터는. 여린 모양새와 같이 곧고 그 모양새와 다르게 고집이 세었다. 고문과 같은 반복되는 행동에도 소녀는 결코 영주를 사용하지 않았다. 죽이려는 자신을 막지 않았고 단 한 번도 원망한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비웃듯 원망하지 않는다는 말만을 되풀이 할 뿐이었다. 정말로 고집이 세었다. 바보같이

“ 마스터”

부들- 부르는 음성에 작은 몸이 떨린다. 그 다음을 알고 있다. 목을 조르고 거의 죽기 직전까지 몰아세운 다음 다시 그 손으로 토닥인다. 이중성과 같은 행동이었지만 그것이 조롱이 아닌 진심이라는 것을 소녀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결코 원망한다는 말을 할 수 가 없었다. 자신을 죽이고 싶어 하는 것도 진심이었고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을 달래주고 싶어 하는 것도 진심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버서커인 것이다. 미쳐버린 이.

당장이라도 꺼져버릴 것 같은 정신을 부여잡으며 소녀는 간신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역시 자신의 생각대로 자신의 몸은 그의 품안에 들어가 있었다. 항상 머리카락을 만져주던 손은 이번에는 등을 쓰다듬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봄날에 흰 나비를 보면 죽는다고 하지요”

구부러진 선을 따라 기사의 손끝이 노다닌다. 너무 다정하여 눈물까지 나게 만들 손길의 감정은 전혀 추악한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손끝으로 매만지던 기사의 손이 소녀의 어깻죽지에 멈춘다. 조그마하게 파인 홈에 둥근 손끝이 닿자 묘한 느낌이 소녀의 몸은 흠칫거렸다. 그런 소녀에 반응에 안심시키듯 멈춘 손끝을 차분히 눕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을 둥근 어깨에 올려 주었다. 못이 박혀 단단한 손바닥이 주는 온기에 소녀는 떨던 몸을 진정시키었다. 따뜻했다. 고문과 같은 행위 뒤에 오는 다정함은,

소녀의 떨림이 진정되자 어깨를 붙들었던 손이 소녀의 얼굴을 들어 올려 자신에게 고정시키었다. 이번 것은 많이 고통스러웠는지 검은 눈동자에 물기가 진득하게 서려있었다. 하지만 만져주었던 손길이 마음에 들었는지 고통에 일그러졌던 표정은 풀어져 마치 그때의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마주치는 검은 눈동자에는 걱정이라는 감정이 들어있었으니까

- 날개가 찢어질지도 몰라요 -

스쳐가는 나비를 걱정한 소녀. 날짜뿐인 봄날 소녀는 기사에게 말했다. 그때 자신은 나비를 만졌고 지금은 소녀의 목을 조른다. 같은 나비. 죽음을 부르는 흰나비, 죽이기를 원하는 소녀.

같은 감정을 담은 눈동자에 기사는 입 꼬리를 올렸다. 물들어야 한다. 날개를, 아까 등을 만지 것도 어딘가에 숨겨질 날개를 찾지 위한 것이었다. 점점 봄은 다가오고 있었다, 소녀의 날개는 껍질을 벗고 드러날 것이다. 그 전에 붉게 물들이지 않으면-

“그런 것은 미신이에요....”

잔뜩 잠에 취한 음성이 기사에게 대답한다. 등을 매마지던 손이 멈추었다. 웃던 얼굴이 멈춘 채 대답을 해준 소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자신의 말만을 남기고 소녀는 잠이 들어 버린 후였다. 그래 그랬다, 처음 그에게 말해준 소녀는 그 다음 말을 덧 붙였다.

그런 건 믿지 않지만....-

그냥 미신이에요. 옛날 어른들이 만든-심드렁하게 말한 소녀는 자신의 앞에서 있는 나비를 감상했었다. 소녀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나비를 보던 눈 안의 감정은 공포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꽃을 보듯 나비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었다. 그때의 소녀는,

“그래도 당신이 하얀색인 것은 싫습니다....”

하얀색이면 붉게 물들어 버리기 쉬우니까-소녀는 듣지 못하지만 그 말을 중얼거린 기사는 소녀를 꼭 끌어안았다. 그 모양은 마치 나뭇가지에 앉은 나비와 같았다



* * *



붉은 손이 소녀를 껴 앉았다. 주룩-그의 몸에 새겨진 문양과 같은 붉은 피가 기사의 팔을 휘감다가 흘러내렸다. 붉은 실과도 같은 붉은 선들이 원래 그가 가진 문양과 섞여 어느 것이 피고 문양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붉은 손이 소녀에게 묻히듯 감싸 안은 등을 파고들었다. 두려움에 빠진 검은 눈동자의 동공이 커졌다.

“이젠”

붉은 눈이 소녀를 담았다. 만족한다는 듯 황홀하기까지 한 기쁨을 담고 소녀를 바라보았다. 미쳐버린 금색의 눈동자에 자신이 바란 대로 붉게 물들은 소녀가 자리잡고 있었다

붉게 물든 소녀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덜덜 떨리는 입술이 벌려진 채 몇 번을 움직이다 겨우 소리를 내었다. 그때와 자신과 똑같은 모습, 한 치의 다름도 없었다. 단지 자신은 침묵했고 소녀는 말을 한다는 것이 다름뿐이었다.

“ 붉게 물들었군요. 당신은”

가시의 말에 소녀의 떨리는 입술이 절규를 내었다. 붉은 눈동자 속에 소녀는 울기 시작한다. 예쁘게 피로 치장한 소녀의 모습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그 흘리는 눈물조차도 붉은 색이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기사는 아름답게 웃었다. 정말 예뻤다. 회색의 원피스에 떨어진 핏자국도 하얀 피부에 묻어 발그레 홍조를 띈 것 마냥 붉은 색을 띄게 만든 피도. 그 모든 것이 정말 마음에 들고 아름다웠다. 더 이상은 자신의 마스터는 하얀색이 아니니까

“왜...”

약간은 푸른색의 입술이 열린다. 공포로 인해 경직이 된 모양. 움직이는 소녀의 입술을 보며 기사는 붉은 색이 아니라는 것에 못마땅함을 느끼며 손을 들어올렸다. 뚜욱-기사의 손에서 붉은 피가 떨어져 바닥과 부딪쳤다. 그러자 크게 떨어진 방울이 부서지며 작은 방울들로 나눠진다. 바닥도 붉어졌다. 이제 소녀의 입술만 붉어지면 되었다.

다가오는 피투성이의 손에 소녀의 입술이 딱 멈추었다. 다가오는 죽음에 무의식적으로 몸을 뒤로 빼었지만 이미 기사의 품에 있었기에 하잘 없는 몸부림으로 그치었다. 마치 연지를 발라주듯 피가 묻는 손가락이 상냥하게 소녀의 입술의 선을 따라 움직였다. 사랑스럽다는 듯

“왜 그런 거에요.....”

자신이 발라준 붉은 입술이 예쁘게 움직였다. 덜덜 떨리는 모양새조차도 사랑스러웠다, 소녀의 말에 기사는 소중하다는 듯이 소녀의 얼굴을 매만졌다. 그러자 지나간 손자국이 붉게 남는다. 여자가 자신에게 만들었던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자신을 구하고 죽은 소녀의 다른 모습. 그렇기에 너무나 행복했다. 다른 이가 붉게 만들기 전 자신이 물들어버렸으니까.

“ 왜 이런 거냐고요, 버서커-!!!!!!!!”

바로 자신의 피로

절규가 공기를 울렸다. 그때와 같이. 남겨진 자의 절규는 항상 그랬다. 단지 소녀는 그것을 입 밖으로 내었고 자신은 눈동자로 외쳤을 뿐이다-어째서 그런 겁니까, 마스터-!!!!

소녀의 외침에 기사는 아무 말 없이 품에 끌어들었다. 아기새마냥 마구 떠는 몸을 진정시켜주기 위해 기사는 굳어가는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검은 머리도 붉게 물든다. 아아, 아름답다. 하지만 그런 기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녀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끄윽 거리는 신음이 오열로 변한다. 붉은 소녀는 마음에 들었지만 그 울음은 시끄러웠다. 심장이 아프게 만들었으니까. 여자는 웃어주었는데 소녀는 울고 있었다. 뒤섞이는 기억에 기사는 역시 자신은 미쳤다고 조소를 흘렸다.

미쳤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버서커란 클래스로 오게 만든 성배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자신은 미쳤다. 여자가 죽은 그 시점부터 되풀이 한 후회에 절망하고 미치기 시작했었다. 이렇게라도 반복되어서 다행이었다. 아마 미치지 않았다면 이렇게 이기적 일 수 없었겠지. 이런 마지막은 상대를 망칠 뿐이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위해 이런 결말을 택한 다는 것은 제 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 다른 디어뮈드는 여자를 죽게 만든 기억을 가진 디어뮈드는 제 정신일수 없었다. 이렇게라도 자신은 그녀의 죽음을 갚고 싶었다. 소녀를 살리고 자신은 죽고 싶었다. 그녀도 그랬으니까.

희미해져가는 금색눈동자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봄이었다. 매서운 기류는 이미 사라지고 조금은 따뜻한 감촉을 두른 바람이 살랑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아아, 그때 마스터와 나비를 보던 때와 같은 하늘과 날씨였다. 이렇게 마스터와 같이 하늘을 보았고 그리고-

하얀 날개가 움직인다. 꽃잎처럼 팔랑거리며 곱게 하늘거리며 공중에 춤을 준다. 연약한 햇살이 하얀 날개에 부딪치자 고운 가루들이 빛을 두르고 자신의 존재를 보여준다. 보석을 갈아 뿌린 것 같이 반짝 빛나며 허공에 퍼진다. 작고 작은 하얀색. 오직 첫 봄날에만 존재하는 연약한 사신.

-흰 나비가 날아들었다. 자신들에게.

기사는 손을 뻗었다. 하얀 나비가 기사의 손끝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나무와 같이 굳어진 몸은 빛의 가루로 변했다. 나비의 가루와 같이. 부서진 가루가 소녀의 몸 위로 떨어졌다. 소녀를 붉게 만들어 버리고서는.

마른 나뭇가지 위에 나비가 내려앉았다.

하얀 꽃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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